[영림원 차세대리더포럼] “인간이 지구에서 더 오래 살아남으려면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야”
[영림원 차세대리더포럼] “인간이 지구에서 더 오래 살아남으려면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야”
  • 박시현 기자
  • 승인 2024.12.02 0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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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호모 심비우스, 자연과 인간의 관계회복’ 주제 강연

[아이티비즈 박시현 기자]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와 생명다양성재단 대표가 29일 열세번째 영림원 차세대리더포럼에서 ‘호모 심비우스, 자연과 인간의 관계 회복’을 주제로 강연했다.

평생을 생물학자로 살아온 최재천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왜 다양성은 중요할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미래에는 이기적인 인간이 설 곳이 없다. 지구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은 오직 ‘협력’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다시 자연으로부터 ‘공생’을 배워야 한다. 지구 위 모든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새로운 인간 ‘호모 심비우스’의 삶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 다양성이 왜 중요할까?


생물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구도를 아주 깔끔하게 정리했다. 제일 위에 신이 있고 그 밑에 천사들이 신을 모시고 살며, 그 다음에는 지상의 왕이 있고 그 밑에 평민들이 있고, 평민들 아래에 동물이 있고 동물은 식물을 뜯어 먹고 살고 무생물은 그 밑에서 판을 깔아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세상의 이런 구도는 기독교 사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서양에서는 2천 년 가까이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단아가 나타났으니 바로 찰스 다윈이다. 찰스 다윈은 인간도 다른 모든 동식물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산물로 어쩌다가 태어난 존재일 뿐 특별히 창조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학술적으로 밝혀냈다.

내가 생각하기에 찰스 다윈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만년 내지 6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침팬지와 우리 조상이 한 집안이었다는 것처럼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을까?

미당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울어제낀 것은 국화꽃을 피워내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자연에 있는 존재들은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서양 사람들은 자연을 ‘네이처’라고 부르는데 중국 사람들이 만든 ‘自然’이라는 단어가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自然은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뜻이다.

자연에 있는 모든 존재 즉 우리 인간을 비롯해 하찮은 지렁이, 진딧물, 쑥부쟁이 등은 누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양성이다.

자연계에서는 다양성이 너무나 소중한 주제이다. 인간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성에 대해서 얘기한다. 기업에 다양한 인재들이 있어야 기업에 도움이 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라고.

나는 지난 10여년 동안 이런 질문을 해도 화를 낼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 질문은 “다양성이 왜 중요할까?” “왜 다양해야 할까?”였다. 이 질문에 흡족할 만한 답을 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우연히 <다이버시티>라는 책을 찾았다. 미국의 보스톤대학교 인류학과의 피터 우드 교수가 쓴 이 책에서 큰 가르침을 받았다.

피터 우드 교수의 얘기는 인류 사회에서 다양성이 중요한 덕목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옛날 왕정 때 백성이 똑똑하면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프니까 백성을 개나 돼지로 취급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탄생하면서 개인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전까지 인류 사회에서는 다양성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세종대왕이 떠올랐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어여삐 여겨 백성이 스스로 생각하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끔 애써서 글을 만들어 줬다. 인류 역사에 이런 통치자가 있었는가?

피터 우드 교수는 이 책에서 미국 케네디 대통령 얘기를 한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하려면 복잡해질 것으로 보고 행정명령으로 이른바 차별금지법에 사인을 한다. 이 행정명령은 인종 차별, 남녀 차별, 종교 탄압을 못하도록 한 것으로 이때부터 미국 사회가 굉장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케네티 대통령이 사인하고 나서 얼마 있다가 암살당하고 그를 이은 린든 존슨 대통령이 차별금지에 꽂혀 이는 미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됐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것이 다양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는 게 피터 우드 교수의 평가이다. 처음에는 차별하면 안된다,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출발했는데 다양성으로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참전 용사에게 대학 등록금을 무제한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법률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입학원서를 냈는데 떨어졌다. 합격한 사람들의 성적표를 알게 되었는데 흑인들, 동양인들이었다. 그래서 고소를 했다. 대법원까지 올라가 이 사람이 승소했다. 그런데 그때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이 있었다. 그 대법관은 차별금지법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다양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다들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다양성은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 “자연은 순수를 혐오” vs “호모사피엔스는 다양성을 혐오


생물학자로서 생물 다양성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이어 왜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이 중요한지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자연계에서는 모든 식물을 모든 곤충이 아무거나 막 먹지 않는다.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서 어떤 식물을 먹는 초식 곤충이 생겨 그 짝이 맺어진 것을 공진화(co-evolution)라고 부른다. 공진화는 그 짝이 서로 조율하면서 진화하는 현상이다. 어느 곤충이 옆의 식물을 다 먹어치우면 똑같은 식물을 찾아 나서야 한다. 예를 들면 인간에게 3미터는 대여섯 발자국이지만 애벌레에게는 구만리같은 길이다. 시력도 좋지 않아서 냄새를 맡아보고 시식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토하며 나아간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그 시간 동안 다 먹어치워진 식물은 또 작은 이파리를 만들어내면서 성장한다.

다양성이 결여된 농장에 모이는 한 종류의 곤충의 진화는 결국 해충으로 전락해 버린다. 한가지 농작물만 재배해 그 농작물을 좋아하는 곤충이 모여들어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면 살충제를 사용하면서 그 곤충은 해충이 되어 버린다. 살충제에 면역이 된 곤충이 다시 돌아오고 더 강한 살충제를 뿌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라는 책에서 농업은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 라고 했다. 농촌이 생물 다양성을 파괴한 주범이라는 것이다. 식물만 그런가, 동물은 어떠한가.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자연계에 엄청난 생물 다양성이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우리는 알 잘 낳는 닭, 육질 좋은 오리, 육질 좋은 돼지 등 특정 형질을 가진 개체만 키우는 인위 선택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닭이나 오리 농장에서 한 마리만 조류독감에 걸려도 구덩이를 파고 살아있는 닭이나 오리까지 집어넣고 흙으로 덮어버리는 살처분이 행해지고 있다. 현장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보건복지부 직원들은 닭, 오리가 구덩이로 빨려 들어가면서 지르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불면증을 앓는다고 한다. 만일 저 우주국에도 보건복지부가 있어 이런 회의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5~6년 전에 지구라는 행성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해 호모사피엔스 7억마리가 감염됐다네요. 이제 감당이 안되겠으니 살처분합시다”

무슨 권한으로 감히 우리 호모사피엔스를 살처분한다는 것인가. 이건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는 짓이다. 문제는 유전자 다양성이다. 화재로 일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어도 독감으로 일가족 몰살 또는 코로나19로 일가족 몰살이라는 기사를 본 적은 없다. 독감으로 또는 코로나19로 일가족 목살이 왜 안 벌어지느냐? 유전자가 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한 가족의 유전자 다양성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별로 없다. 옆집하고 비교하면 유전자 다양성이 보이지만 한 집안에서 유전자 다양성은 별로 없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으로 찰스 다윈 이래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로 칭송받았던 윌리엄 해머튼 교수는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고 했다. 자연에서 말하는 순수는 다양성이 결여된 상태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분화하고 다양한 것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1년 반 남짓의 기간 동안 알파, 델타, 오미크론 등 세 번의 변신을 했다. 이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이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자연의 일부로 살아야 할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은 다양성을 혐오한다. 다양성을 없애기 위해서 매일같이 무지무지 노력하며 산다. 인간 사회의 모든 조직 사회는 끊임없이 회의를 한다. 좀 삐딱한 소리 한마디 하면 다 째려본다. 한 목소리로 통일하기 위해서 회의를 하는 것 같다. 질서정연해야 되고 일사불란해야 한다. 다양한 것을 싫어한다. 이것이 호모사피엔스의 불행의 근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의 흐름은 다양화의 흐름인데 그 거대한 물결을 호모사피엔스는 거스르며 살고 있다. 10년 전에 미국에서 숲에 가면 뭐가 좋은지를 물은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같은 나무가 반복적으로 서 있는 숲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꽃밭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는 것보다 똑같은 꽃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에 감동을 받는다. 여기서 내린 결론은 호모사피엔스는 다양성보다는 균일성에 더 꽂혀 있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자연은 거의 모든 문제를 다양성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은 정반대라는 사실에서 참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


사회학자들은 인류 역사에 적어도 두 번의 소중한 전환이 있었다고 가르친다. 언어 전환과 문화 전환이 그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기술 전환, 정보 전환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전환으로 풍요롭게 살아가는 듯하다가 팬데믹을 한 번 당하면 모든 게 다 무너진다. 전염병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끝이 아니며 또다른 바이러스가 올 것이라는데 100% 동의한다. 다음에 오는 바이러스는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와 있다. 나는 그래서 기술이나 정보 등 이런 전환보다는 지금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생태적 전환일 수밖에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제대로 정립할 것인가?라는 문제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는가?

나는 20여 년 전에 인간의 새로운 학명으로 ‘호모 심비우스’를 제안했다. 호모 심비우스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와 공생을 뜻하는 심비오시스의 합성어로 ‘공생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이 지구를 다른 생명들과 함께 공유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간으로 거듭나자고 해서 제안했다.

그동안 이 제안은 무시당했었는데 코로나 와중에 미국의 유명 출판사로부터 호모 심비우스라는 제목으로 책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출판사에서는 호모심비우스가 코로나 같은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고 또 미래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해 제의한다고 했다. 20여년 동안 버림받았던 개념이 갑자기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와중에서 부활한 셈인데 호모 심비우스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모 심비우스의 개념 속에는 다양성이 들어있다. 최근 사람들은 다양성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한다. 다양성, 협업, 공생 등등.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얘기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요즘은 지식 생태계, 금융생태계 등 생태계 얘기도 많이 한다. 생태계가 얼마나 험한 곳인지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 월트디즈니의 CEO로 디즈니를 되살린 인물로 평가받는 마이클 아이스너는 “다양성은 창의성을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양성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 중에서도 캐나다의 23대 총리였던 쥐스탱 트뤼도가 하는 다양성 얘기를 매우 좋아한다.

언젠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국제 생물 다양성 협약에 갔다가 밤에 호텔방에서 주스탱 트뤼도 총리가 내각을 꾸미는 장관 임명식을 캐나다 공영방송에서 실황 중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당선 전에 여성 장관의 비율을 50%로 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웠는데 그 공약을 정확하게 지켰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 계통, 힌두 계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장관으로 발탁했다. 식물 다양성을 연구하다 보니 아름다운 생태계를 보기도 하는데 그동안 한 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었는데 이 장관 임명식을 보고 엄청 울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이것이 바로 호모사피엔스가 해야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통섭과 숙론


‘백지영의 끝장 토론’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끝장 토론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 토론은 끝장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토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자기네들끼리 결정을 한다. 선생님은 뒤에서 지켜봐 준다. 이런 토론을 초등, 중등 내내 하다보니 대학에서 교수들은 토론 수업을 할 수 있다.

나는 20여년 전에 우리 사회에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하버드 대학 시절 지도 교수였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에 펴낸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통섭’으로 번역했다. 컨실리언스는 당시 어떤 영어 사전에도 없던 단어였다. 19세기 영국의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처음 만들어서 쓰다가 인기가 없어 죽어버린 고어였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석학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이를 발굴해 책 제목으로 쓴 것이다. 놀라운 건 같은 해에 캘리포니아에서 ‘컨실리언스 와인’이 출시된 것이다. 이 와인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4명의 와이너리 오너가 한 오크통 안에 각자의 와인 원액을 배합해 만든 제품이다. 어떤 이름을 지을까를 놓고 각자 심혈을 기울여 이름을 하나씩 만들고 3시간의 토론을 거쳐 투표를 해서 마침내 이름을 지었다. 막상 투표를 할 때는 자기가 만든 이름을 기꺼이 접고 친구가 만든 이름으로 했다. 바로 이것이 토론이다. 나는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해서 저렇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저 친구는 어떻게 이 문제를 이런 각도에서 볼 수 있었지?라며 내 생각을 다듬어가는 게 토론의 목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입시 제도가 혁명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중고등학교에서 토론 수업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 사회가 토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서로 마주 앉아 예의를 갖추고 얘기하고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걸 다 갖췄다. 혼자 하면 무지하게 잘하는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이상한 짓을 하는데 이것만 극복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토론에 관한 책으로 <숙론(熟論)>을 썼다. 토론의 ‘토’자가 한자로 ‘討’이다. 두들긴다는 뜻이다. 서로 두들겨 패는 건가 싶어서 그 단어를 버리고 ‘숙론’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내가 만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큰 사전에 있었다. 숙론은 깊이 생각하면서 얘기하자는 뜻이다. 잘 이끄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조선의 임금들이 경연을 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통치자들은 일단 똑똑해야 했다. 사대부들과 같이 사서삼경을 읽으면서 지적으로 사대부들을 제압할 수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원래 잘하던 나라였다. 저잣거리에서 탈 하나 쓰고 양반이나 임금의 흉을 다 봤다. 포졸들이 잡아 감옥에 집어넣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것을 허용했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진 것은 일제 때라고 생각된다. 너무 다양한 생각을 가지면 골치 아프니까 처음으로 주입식 교육이라는 걸 시작했다. 모두가 똑같은 지식을 갖고 있어 똑같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야 통치하기가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해방이 된 다음에도 그걸 벗지 못했다.

통섭을 영어권에서는 ‘점핑 투게더’라고 표현한다. 함께 솟구치자는 얘기다. 분야를 넘나들면서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솟구치며 승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숙론이 필요하다. 숙론은 ‘토킹 투게더’다. 20년 전에 통섭을 얘기하고 이제 드디어 그 방법으로 숙론을 제시한 것이다. 통섭이라는 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얘기하면서 통섭적 지식이나 통섭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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